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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긴글 짧은글 ♣/시가 있는 풍경

북한강 기슭에서

by 별스민 2013. 1. 29.

 

북한강 기슭에서
             고정희

위로받고 싶은 사람에게서 위로받지 못하고

돌아서는 사람들의 두 눈에서는

북한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서로의 등을 기대고 싶은 사람에게서 등을 기대지 못하고

돌아서는 사람들의 두 눈에서도

북한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건너지 못할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미류나무 잎새처럼 안타까이 손 흔드는 사람들의 두 눈에서도

북한강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상에 안식이 깃드는 황혼녘이면 두 눈에 흐르는 강물들 모여

구만리 아득한 뱃길을 트고 깊으나 깊은 수심을 만들어

그리운 이름들 별빛으로 흔들리게 하고 끝끝내 못한 이야기들

자욱한 물안개로 피워올리는 북한강 기슭에서,

 

사랑하는 이여, 내 생에 적셔 줄 가장 큰 강물
또한 당신 두 눈에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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