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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긴글 짧은글 ♣/시가 있는 풍경 991

세월이 가는 줄만 알았는데 세월이 가는 줄만 알았는데                              김수용세월이 가는 줄만알았는데추억으로 점점다가오고 있었다아스라이 사라져 간싸한 기억 속에가시로 남아 있는그 사람여름이 떠나고또다시가을의 문턱에 서니흰머리 휘날리는주름진 눈가에시린 눈물살포시 머물다 사라진 후떨어지는 꽃잎에 투영되는그리운 사람 2025. 1. 8.
폭설 폭설     마종기 무엇이 당신을 잠 못 들게 하는가.깊은 산속에서 만난 눈사태,앞이 보이지 않게한정 없이 내리는 꽃잎.눈 내리는 소리는침묵보다 조용하다.온몸에 눈 덮고잠이 드는 나무들.아름다운 것은 조용하다.모든 아름다운 것은 간단하다.아직 잠들지 못한 나무는추위를 많이 타는가.폭설을 핑계 삼아기대고 다가서서아무도 말리지 못하게서로를 만지는 나무.가지가 부러지고큰 눈꽃 떨어지기 시작한다.조용한 것이 무서워진다.저녁이 내리는 우리들이 무서워진다. 2025. 1. 7.
늘, 혹은 늘, 혹은      조병화늘, 혹은 때때로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얼마나 생기로운 일인가 늘, 혹은 때때로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카랑 카랑 세상을 떠나는시간들 속에서 늘, 혹은 때때로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얼마나 인생다운 일인가 그로 인하여적적히 비어있는 이 인생을가득히 채워 가며 살아갈 수 있다는 건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가까이, 멀리, 때로는 아주 멀리보이지 않는 그곳에서라도끊임없이 생각나고, 보고 싶고,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얼마나 지금, 내가아직도 살아 있다는 명확한 확인인가 아, 그러한 네가 있다는 건얼마나 따사로운 나의 저녁노을인가. 2025. 1. 4.
초겨울 저녁 초겨울 저녁          문정희 나는 이제 늙은 나무를사랑하게 되었습니다.다 버리고 정갈해진 노인같이부드럽고 편안한 그늘을 드리우고 앉아바람이 불어도좀체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무성한 꽃들과 이파리들에 휩쓸려한 계절 온통 머리를 풀고 울었던옛날의 일들까마득한 추억으로 나이테 속으로 감추고흰눈이 내리거나 새가 앉거나 이제는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 되어저 대지의 노래를 조금씩가지에다 휘감는나는 이제 늙은 나무를사랑하게 되었습니다. 2024. 12. 30.
함박눈 함박눈        목필균  ​아침에 눈을 뜨니세상은 온통 은빛 속에 있습니다 ​깃털로 내려앉은 하얀 세상먼 하늘 전설을 물고하염없이 눈이 내립니다​오늘 같은 날에는같은 기억을 간직한 사람과따뜻한 차 한잔 나눌 수 있다면예쁜 추억 다 꺼내질 것 같습니다​하얀 눈 속에 돋아난 기억 위에다시 수북히 눈 쌓이면다시 길을 내며 나눌 이야기들​오늘 같은 날에는가슴으로 녹아드는 눈 맞으며보고싶은 사람을 그리워합니다 2024. 12. 27.
12월 12월     오세영 불꽃처럼 남김없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스스로 선택한 어둠을 위해서마지막 그 빛이 꺼질 때, 유성처럼 소리없이 이 지상에깊이 잠든다는 것은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허무를 위해서 꿈이찬란하게 무너져 내릴 때 젊은 날을 쓸쓸히 돌이키는 눈이여,안쓰러 마라생애의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사랑은 성숙하는 것 화한히 밝아 오는 어둠 속으로시간의 마지막 심지가 연소할 때눈 떠라절망의 그 빛나는 눈. 2024. 12. 26.
동백 피는 날 동백 피는 날        도종환​허공에 진눈깨비치는 날에도동백꽃 붉게 피어아름답구나눈비 오는 저 하늘에길이 없어도길을 내어 돌아오는새들 있으리니살아 생전 뜻한 일못다 이루고그대 앞길 눈보라가득하여도동백 한 송이는 가슴에품어 가시라다시 올 꽃 한 송이품어 가시라 2024. 12. 17.
어떤 삶 어떤 삶​      박인걸 ​     겨울에게로 성큼성큼가을이 걸어 들어간다.정면으로 승부하지 않고일시적 포로가 되는 것이다. ​ 옷을 홀랑 벗고두 손 들어 항복하는 나무들칼바람에 하염없이 울며겨울의 수인이 되더라도 ​무모하게 대항하거나어리석게 삶을 포기 할 수 없어지금은 수치스럽더라도그 날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 백사장에 놓인 고깃배도밀물에 뜨는 날이 오고터널 저 편에 새 세상이 있으니절망하지만 않으면 기회는 또 온다. 2024. 12. 9.
외로운 세상 외로운 세상 ​         이외수​힘들고 눈물겨운 세상나는 오늘도 방황 하나로 저물녘에 닿았다거짓말처럼 나는 혼자였다만날사람이 없었다보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그냥 막연하게 사람만 그리워졌다사람들속에서 걷고 이야기하고 작별하면서 살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결코 섞여지지 않았다그것을 잘 알면서도 나는 왜 자꾸만사람이 그립다는 생각을 하는 것일까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도무지 알 수 없는 한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이 세상도 끝나고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려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번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도 하지도무지 알 수 없는 한가지 사람을 사랑한.. 2024. 12. 8.
첫눈 오는 날의 시 첫눈 오는 날의 시                 정연복 맘속으로 기다리고또 기다리던 첫눈지금 풍성히 내리고 있다. 하늘과 땅 사이의무한 허공 가득눈송이 송이마다가벼운 춤사위. 오늘은 나도춤추듯 살아야겠다삶의 염려와 욕심 따위하얗게 잊고. 세상모르는어린아이 처럼백설의 순수한마음 하나만 품고서. 2024. 12. 8.
나비는 길을 묻지 않는다 나비는 길을 묻지 않는다                             박상옥나비는 날아오르는 순간 집을 버린다.날개 접고 쉬는 자리가 집이다.잎에서 꽃으로 꽃에서 잎으로 옮겨 다니며어디에다 집을 지을까 생각하지 않는다.햇빛으로 치장하고 이슬로 양식을 삼는다.배불리 먹지 않아도 고요히 내일이 온다.높게 날아오르지 않아도 지상의 아름다움이낮은 곳에 있음을 안다.나비는 길 위에 길을 묻지 않는다. 2024. 12. 8.
하얀 겨울에 쓴 편지 하얀 겨울에 쓴 편지                  문희숙 섬진강 너머 외딴집 굴뚝엔돌이엄마 아침밥 하시는지파란 연기 모락모락 피여나고 강기슭따라 산기슭 바위에물새가 앉아있는 나룻배에도하얀 동화 나라같이 아름답다 서울로 떠난 그사람 생각에숙이 가슴이 콩콩 뛰는 것은함박운 내리면 온다고 했는데 긴긴밤 그리움 가득히 담아꿈길로 편지쓰는 하얀 겨울창가엔 함박눈 조용히 쌓인다 2024. 1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