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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긴글 짧은글 ♣/시가 있는 풍경 991

사는 일 사는 일    나태주 오늘도 하루 잘 살았다굽은 길은 굽게 가고곧은 길은 곧게 가고막판에는 나를 싣고가기로 되어 있는 차가제 시간보다 먼저 떠나는 바람에걷지 않아도 좋을 길을 두어 시간땀흘리며 걷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나쁘지 아니했다걷지 않아도 좋을 길을 걸었으므로만나지 못할 뻔했던 싱그러운바람도 만나고 수풀 사이빨갛게 익은 멍석딸기도 만나고해 저문 개울가 고기비늘찍으러 온 물총새물총새, 쪽빛 나래 짓도 보았으므로 이제 날 저물려고 한다길 바닥을 떠돌던 바람도 잠잠해졌고새들도 머리를 숲으로 돌렸다오늘도 하루 나는 이렇게 잘 살았다 2024. 9. 11.
인생이라는 항구 인생이라는 항구 사람들은 인생이라는 항구에 도달하기 위해서 저마다 자기 배를 출발시킨다  배에는 사랑도 싣고 희망도 싣고 또 양심과 정의 의리와 우정도 싣는다  그러나 배는 너무 많은 것을 실었기 때문에 잘 나아가지 못한다  순조롭게 나아가기 위해서 사람들은 하나 둘씩 버리기 시작한다  양심을 버리고 희망을 포기하고 사랑도 정의도 버리며 짐을 줄여 나간다  홀가분해진 배는 그런데로 달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인생의 끝인 항구에 도착하면 결국 배에는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이 텅 비어 있다. 이렇게 삶을 바라보며 인생을 항해하는인간의 방식은 그의 운명을 결정한다 -삶이 그대를 슬프게 할지라도  중에서- 2024. 9. 9.
그리 먼 얘기도 아닌 듯 한데 《 그리 먼 얘기도 아닌 듯 한데 》                               오세영 그리 먼 얘기도 아닌 듯한데당신 이름 석자 불러보면낯설게 느껴집니다그렇게 많이 불러왔던 이름인데...그리먼 얘기도 아닌 듯한데당신 고운 얼굴 떠올리면썰렁할 정도로 어색하게 느껴집니다그렇게 많이 보아왔던 얼굴인데...그리 먼 얘기도 아는 듯한데이제는 잊고 살 때가 되었나 봅니다외로움이 넘칠 때마다 원해 왔던 일인데힘들여 잊으려 했던 때보다더 마음이 아파옵니다그렇게 간절히 원해 왔던 일인데... 2024. 8. 26.
어떤날 어떤 날     도종환​​어떤 날은 아무 걱정도 없이풍경소리를 듣고 있었으면바람이 그칠 때 까지 듣고 있었으면​어떤 날은 집착을 버리듯 근심도 버리고 홀로 있었으면바람이 나뭇잎을 다 만나고 올 때까지홀로 있었으면​바람이 소쩍새 소리를 천천히 가지고 되오는 동안 밤도 오고 별 하나 손에 닿는 대로 따다가 옷섶으로닦고 또 닦고 있었으면​어떤 날은 나뭇잎처럼 즈믄 번뇌의나무에서 떠나 억겁의 강물 위를소리 없이 누워 흘러갔으면 무념 무상 흘러갔으면 Stay with Me Till The Morning - Dana Winner 2024. 8. 25.
여름 여름            정연복 여름은 좀체종잡을 수 없는 변덕쟁이. 한낮의 찜통더위에땀이 강처럼 흐르다가도 하늘이 내려주는벼락 선물같이 소낙비 한줄기 퍼부으면온몸에 서늘한 기운 가시 돋는다. 2024. 8. 23.
세월은 세월은    조병화 ​  세월은 떠나가면서 기쁨보다는 슬픔을 더 많이 남기고 갑니다 ​  봄 여름이 지나가면서 가을을 남기고 가듯이 가을이 지나가면서 겨울을 남기고 가듯이 ​  만남이 지나가면서 이별을 남기고 가듯이 사랑이 지나가면서 그리움을 남기고 가듯이 ​  아, 세월 지나가면서 내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빈자리를 남기고 갑니다 2024. 8. 15.
오늘은 어제의 생각에서 오늘은 어제의 생각에서 비롯되었고현제의 생활은 내일의 삶을 만들어 간다 삶은 이 마음이 만들어 내는 것이니순수한 마음으로 말과 행동을 하게되면기쁨은 그를 따른다 수레의 바퀴가 소를 따르듯이오늘은 어제의 생각에서 비롯되었고현제의 생각은 내일의 삶을 만들어 간다 - 법구경에서 - 2024. 8. 14.
흘러가는 것들을 위하여 흘러가는 것들을 위하여                  나호열용서해다오흘러가는 강물에 함부로 발 담근 일흘러가는 마음에 뿌리내리려 한 일이슬 한 방울 두 손에 받쳐드니어디론가 스며들어가는아득한 바퀴 소리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들을 위하여은밀히 보석상자를 마련한 일용서해다오연기처럼 몸 부딪쳐힘들게 우주 하나를 밀어올리는무더기로 피어나는 개망초들꽃이 아니라고함부로 꺾어 짓밟은 일 2024. 8. 13.
꽃아 꽃아 김 형 영 누구 마음 설레게 하려고웃음 머금고 오는 것이냐진달래 연달래 철쭉 웃음으로무심한 눈들 뜨라고 오는 것이냐 작년에 피었던 것보다 더눈부시게 피어서향기 퍼뜨리려 왔느냐 꽃아, 네 향기에 젖어나더러 거듭나라는 거냐세상을 다시 걸어가라는 거냐 2024. 8. 13.
여름 풍경 여름 풍경      박인걸  여름 풀밭위로 개망초 꽃 파도처럼 일렁이고 약탕기 한약 달이듯 섞인 풀꽃 향기 진동한다  밀은 이미 익었고 감자도 영근 알을 토해낸다. 강낭콩 넝쿨 처마까지 뻗고 옥수수 볼기가 통통하다  여름 한낮은 화덕이고 빳빳하던 미루나무도 지쳤다 화살처럼 쏟아지는 햇살에 산새들은 놀라 달아난다.  땀방울이 등솔기로 도랑물처럼 흐를 때면 하얀 이빨을 드러내는 동해 바다가 마냥 그립다. 2024. 8. 12.
세월 세 월   이해인  ​ 물이 흐르는 동안 시간이 흐르고 ​ 시간이 흐르는 동안 물이 흐르고 ​ 하늘엔 흰 구름 땅에는 꽃과 나무 ​ 날마다 새롭게 피었다 지는 동안 ​ 나도 날마다 새롭게 피었다 지네 ​ 모든 것 다 내어주고도 마음 한켠이 ​ 얼마쯤은 늘 비어 있는 쓸쓸한 사랑이여 ​ 사라지면서 차오르는 나의 시간이여 2024. 8. 5.
장마의 계절 장마의 계절     조병화 지금 나는 비에 갇혀 있습니다갈 곳도 없거니와갈 수도 없습니다​​매일 매일 계속되는 이 축축한무료(無聊)적요(寂寥)어찌 이 고독한 나날을 다 이야기하겠습니까​​비는 내리다가 쏴와! 쏟아지고쏟아져선 길을 개울로 만듭니다​​훅, 번개가 지나가면하늘이 무너져 내는 천둥 소리 ​하늘은 첩첩이 검은 구름지금 세상 만물이 비에 묶여 있습니다 Bill Douglas - Forest Hymn 2024. 8.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