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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긴글 짧은글 ♣/시가 있는 풍경 924

호수 호수 박인걸 호수에 오면 내 마음이 맑은 물 속으로 가라앉는다. 고향만큼이나 넉넉하게 받아주기 때문이다. 호수는 언제나 푸근하게 하늘과 구름과 산도 품는다. 산이 저토록 아름다운 건 호수에 몸을 담그기 때문이다. 사납게 뛰놀던 바람도 호수에 이르면 순해 지지만 호수에 비친 내 모습은 아직은 일렁거리고 있다. 호수에 나를 빠트리고 며칠만 잠겼다 다시 나오면 내 마음과 눈동자도 호수처럼 맑아질 것 같다. 2023. 11. 16.
바람의 풍경 생각해 보면 내게는 길만이 길이 아니고 내가 만난 모든 사람이 길이었다 나는 그 길을 통해 바깥 세상을 내다 볼 수 있었고 또 바깥 세상으로도 나왔다 그 길은 때론 아름답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그 길을 타고 사람을 타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하니 왠일일까 -신경림의 자전에세이집 바람의 풍경 중에서 - 2023. 11. 9.
멀리서 빈다 멀리서 빈다 -나태주- ​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2023. 11. 9.
11월 11월...나태주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날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2023. 11. 9.
가을의 창문을 열면 가을의 창문을 열면 이외수 어디쯤 오고 있을까 세월이 흐를수록 마음도 깊어지는 사람 하나 단풍나무 불붙어 몸살나는 그리움으로 사라질 때 뭉게뭉게 개어가는 하늘이 예뻐 한참을 올려다 보니 그곳에 당신 얼굴이 환하게 웃고 계십니다 그대 모습 그대 생각 머물며 난 자꾸만 가슴이 뜁니다. 2023. 11. 8.
가을에 부치는 편지 가을에 부치는 편지 박인걸 여보게! 마을이 단풍속에 묻히니 내 마음도 그 속에 파묻히네. 물감으로 칠할 수 없는 색깔들이 가을나무들을 휘감을 때면 작년 가을에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 두근거리는 심장을 굵게 두드리네. 아직 된 서리가 내리기 전 청초한 들국화 높은 하늘을 쓸어 담고 고즈넉한 석양 무렵 고개를 숙일 때면 늦가을 저녁 바람마저 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채 서성이고 붉은 노을은 꽃잎에 입을 맞춘다네. 진노랑 은행잎이 뚝뚝 떨어질 때 까마득히 잊었던 삶의 뒤안길을 돌아보며 곱게 늙어가리라 다짐했던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아직 덜 여문 내 마음을 꺼내어 붉게 물든 단풍나무에 걸어 놓는다네. 여보게! 이 가을마져 그 동안이 얼마남지 않아 쫓기는 듯함 아쉬움이 주위를 서성거리네. 어둑한 하늘을 나는.. 2023. 10. 31.
가을 전송 가을전송 공석진 가을을 전송합니다 화려함 남겨두고 빛 바랜 옛 추억을 나들 길로 보냅니다 고독을 만끽하세요 위태로운 정이 매달린 험한 비탈 위 정처 없는 낙엽으로 이별을 강요하신다면 수신을 거절하렵니다 발신자도 없는 이름뿐인 천사 언제든 떠나려는 배낭 짊어진 당신을 기다리느니 차라리 양지바른 논둑에 누워 아릿하게 남아있는 바람꽃 향기를 추억하렵니다 2023. 10. 29.
가을 가 을 유안진 이제는 사랑도 추억이 되어라 꽃내음보다는 마른풀이 향기롭고 함께 걷던 길도 홀로 걷고 싶어라 침묵으로 말하며 눈 감은 채 고즈너기 그려보고 싶어라 어둠이 땅 속까지 적시기를 기다려 비로소 등불 하나 켜놓고 싶어라 서 있는 이들은 앉아야 할 때 앉아서 두 손 안에 얼굴 묻고 싶은 때 두 귀만 동굴처럼 길게 열리거라 2023. 10. 23.
코스모스 코스모스 윤동주 청초한 코스모스는 오직 하나인 나의 아가씨 달빛이 싸늘히 추운 밤이면 옛 소녀가 못 견디게 그리워 코스모스 핀 정원으로 찾아간다 코스모스는 귀뚜리 울음에도 수집어지고 코스모스 앞에선 나는 어렸을적 처럼 부끄러워지나니 내 마음은 코스모스의 마음이오 2023. 10. 15.
코스모스 코스모스 오애숙 하늘빛 닮아 그리도 청순한가 어릴적엔 네모습 어찌나 가여웠던지 밤새 바람불면 콩닥콩닥 뛰던 가슴 이른아침 쓸어안고 철길로 달려가 보면 간밤의 모진고초 아랑 곳 하지 안고서 어찌 그리도 당당하게 해맑게 웃었는지 가끔 세상사 힘들때 아침이슬로 헹궈 웃는 너의 당당함 생각하네 2023. 10. 15.
가을 사랑 가을사랑 도종환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부는 저녁 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은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2023. 10. 14.
가을 안부 가을 안부 홍사성​ ​ 아침산보를 나갔더니 찬이슬이 발목을 적셨습니다 ​ 내내 푸르던 나뭇잎도 어느새 수굿수굿해졌습니다 ​ 지나간 여름날보다 다가올 겨울을 채비하는 계절 ​ 이 서늘한 오늘을 당신,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요 2023. 10.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