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저녁
문정희
나는 이제 늙은 나무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다 버리고 정갈해진 노인같이
부드럽고 편안한 그늘을 드리우고 앉아
바람이 불어도
좀체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무성한 꽃들과 이파리들에 휩쓸려
한 계절 온통 머리를 풀고 울었던
옛날의 일들
까마득한 추억으로 나이테 속으로 감추고
흰눈이 내리거나 새가 앉거나
이제는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저 대지의 노래를 조금씩
가지에다 휘감는
나는 이제 늙은 나무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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