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와 풍경과 에세이 ♣2107

짧은 노래 짧은 노래        류시화 벌레처럼 낮게 엎드려 살아야지풀잎만큼의 높이라도 서둘러 내려와야지벌레처럼 어디서든 한 철만 살다 가야지남을 아파하더라도나를 아파하진 말아야지다만 무심해야지올 일이 있어도 벌레의 울음만큼만 울고허무해도벌레만큼만 허무해야지죽어서는 또벌레의 껍질처럼 그냥 버려져야지 2025. 2. 14.
세월은 세월은    조병화 세월은 떠나가면서기쁨보다는슬픔을 더 많이 남기고 갑니다. 봄 여름이 지나 가면서가을을 남기고 가듯이가을이 지나 가면서겨울을 남기고 가듯이만남이 지나 가면서이별을 남기고 가듯이사랑이 지나가면서그리움을 남기고 가듯이 아, 세월 지나가면서내 가슴에지워지지 않는빈 자리를 남기고 갑니다 2025. 2. 14.
부끄러움 부끄러움      趙炳華인생을 다 산 이 끝자락에서  무슨 그리움이 또 남아 있겠는가만이 외로움은 어디에 끼여 있는사람의 때 이런가참으로 오래도 살아오면서모진 그리움, 모진 아쉬움, 모진 기다림, 그 사랑 만남과 헤어짐,희로애락 겪은 내게무슨 미진함이 또 있겠는가만아직도 채 닦아내지 못한 이 외로움은어디에 남아 있는 사람의 때 이런가때때로, 혹은시도때도 없이 스며드는 이 외로움아, 이 끝자락에이 부끄러움을 어찌하리. 2025. 2. 9.
추억 추억    조병화 잊어버리자고 잊어버리자고바다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하루 이틀 사흘여름 가고 가을 가고조개 줍는 해녀의 무리사라진 겨울 이 바다에아~ 아~ 이 바다에잊어버리자고 잊어버리자고바다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하루 이틀 사흘잊어버리자고 잊어버리자고앞산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나흘 닷새 엿새여름 가고 가을 가고나물 캐는 처녀의 무리사라진 겨울 이 산에아~ 아~ 이 산에잊어버리자고 잊어버리자고앞산 기슭을 걸어보던 날이나흘 닷새 엿새 2025. 2. 9.
안양천의 석양 늦은 시간 모처럼 안양천 산책길에서 비행기 날고 철새도 날아가는 석양을 즐기다 2025. 1. 13.
세월이 가는 줄만 알았는데 세월이 가는 줄만 알았는데                              김수용세월이 가는 줄만알았는데추억으로 점점다가오고 있었다아스라이 사라져 간싸한 기억 속에가시로 남아 있는그 사람여름이 떠나고또다시가을의 문턱에 서니흰머리 휘날리는주름진 눈가에시린 눈물살포시 머물다 사라진 후떨어지는 꽃잎에 투영되는그리운 사람 2025. 1. 8.
폭설 폭설     마종기 무엇이 당신을 잠 못 들게 하는가.깊은 산속에서 만난 눈사태,앞이 보이지 않게한정 없이 내리는 꽃잎.눈 내리는 소리는침묵보다 조용하다.온몸에 눈 덮고잠이 드는 나무들.아름다운 것은 조용하다.모든 아름다운 것은 간단하다.아직 잠들지 못한 나무는추위를 많이 타는가.폭설을 핑계 삼아기대고 다가서서아무도 말리지 못하게서로를 만지는 나무.가지가 부러지고큰 눈꽃 떨어지기 시작한다.조용한 것이 무서워진다.저녁이 내리는 우리들이 무서워진다. 2025. 1. 7.
눈 소식 눈 소식이 전해지는 주말 저녁잠시라도 함박눈이 내렸으면 하는 마음으로... 2025. 1. 4.
늘, 혹은 늘, 혹은      조병화늘, 혹은 때때로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얼마나 생기로운 일인가 늘, 혹은 때때로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카랑 카랑 세상을 떠나는시간들 속에서 늘, 혹은 때때로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얼마나 인생다운 일인가 그로 인하여적적히 비어있는 이 인생을가득히 채워 가며 살아갈 수 있다는 건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가까이, 멀리, 때로는 아주 멀리보이지 않는 그곳에서라도끊임없이 생각나고, 보고 싶고,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얼마나 지금, 내가아직도 살아 있다는 명확한 확인인가 아, 그러한 네가 있다는 건얼마나 따사로운 나의 저녁노을인가. 2025. 1. 4.
초겨울 저녁 초겨울 저녁          문정희 나는 이제 늙은 나무를사랑하게 되었습니다.다 버리고 정갈해진 노인같이부드럽고 편안한 그늘을 드리우고 앉아바람이 불어도좀체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무성한 꽃들과 이파리들에 휩쓸려한 계절 온통 머리를 풀고 울었던옛날의 일들까마득한 추억으로 나이테 속으로 감추고흰눈이 내리거나 새가 앉거나 이제는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 되어저 대지의 노래를 조금씩가지에다 휘감는나는 이제 늙은 나무를사랑하게 되었습니다. 2024. 12. 30.
함박눈 함박눈        목필균  ​아침에 눈을 뜨니세상은 온통 은빛 속에 있습니다 ​깃털로 내려앉은 하얀 세상먼 하늘 전설을 물고하염없이 눈이 내립니다​오늘 같은 날에는같은 기억을 간직한 사람과따뜻한 차 한잔 나눌 수 있다면예쁜 추억 다 꺼내질 것 같습니다​하얀 눈 속에 돋아난 기억 위에다시 수북히 눈 쌓이면다시 길을 내며 나눌 이야기들​오늘 같은 날에는가슴으로 녹아드는 눈 맞으며보고싶은 사람을 그리워합니다 2024. 12. 27.
12월 12월     오세영 불꽃처럼 남김없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스스로 선택한 어둠을 위해서마지막 그 빛이 꺼질 때, 유성처럼 소리없이 이 지상에깊이 잠든다는 것은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허무를 위해서 꿈이찬란하게 무너져 내릴 때 젊은 날을 쓸쓸히 돌이키는 눈이여,안쓰러 마라생애의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사랑은 성숙하는 것 화한히 밝아 오는 어둠 속으로시간의 마지막 심지가 연소할 때눈 떠라절망의 그 빛나는 눈. 2024. 1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