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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긴글 짧은글 ♣/시가 있는 풍경

저녁강에서 ..... 복효근

by 별스민 2008. 11. 15.

저녁강에서

 

 

사는 일 부질없어
살고 싶지 않을 때 하릴없이
저무는 강가에 와 웅크리고 앉으면
내 떠나온 곳도
내 가야 할 그 곳도 아슴히 보일 것만 같으다

강은 어머니 탯줄인 듯
어느 시원始原에서 흘러와 그 실핏줄마다에
하 많은 꽃

하 많은 불빛들

 

안간힘으로 매달려 핀다

 


이 강에 애면글면 매달린 저 유정무정들이
탯줄에 달린 태아들만 같아서
강심江心에서 울리는 소리
어머니 태반에서 듣던 그 모음만 같아서
지금은 살아있음 하나로 눈물겹다

 


저문 강둑에 질경이는 더욱 질겨
보일둥말둥 그 끝에 좁쌀 같은 꽃도 부질없이 핀다

 


그렇듯
세상엔 부질없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
오늘 밤 질경이 꽃 한 톨로
또한 부질없는 것이 하나도 없다

 


아직 하류는 멀다
언젠가 이 탯줄의 하류로 하류로 가서
더 큰 자궁에 들어 다시 태어날 때 까지는
내일도 나는 한 가닥 질경이로
살아야겠는 것이다


저 하류 어디쯤에 매달려
새로이 돋는 것이 어디 개밥 바라기 별 뿐이겠느냐

나는 다시 살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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