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비의 노래
마종기
나이 들면 사는 게 쉬워지는 줄 알았는데
찬비 내리는 낮은 하늘이 나를 적시고
한기에 떠는 나뭇잎 되어 나를 흔드네.
여기가 희미한 지평의 어디쯤일까.
사선으로 내리는 비 사방의 시야를 막고
헐벗고 젖은 속세에 말 두 마리 서서
열리지 않는 입 맞춘 채 함께 잠들려 하네.
눈치 빠른 새들은 몇 시쯤 기절에서 깨어나
시간이 지나가버린 곳으로 날아갈 것인가.
내일도 모레도 없고 늙은 비의 어깨만 보이네.
세월이 화살되어 지나갈 때 물었어야지.
빗속에 혼자 남은 내 절망이 힘들어할 때
두꺼운 밤은 내 풋잠을 진정시켜 주었고
나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편안해졌다.
나중에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안개가 된 늙은 비가 두드려주었지만
아, 오늘 다시 우리 가슴을 설레게 하는
빗속에 섞여 내리는 당신의 지극한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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