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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긴글 짧은글 ♣/시가 있는 풍경

봄밤의 회상 ..... 이외수

by 별스민 2009. 4. 16.
봄밤의 회상
         시: 이외수


밤새도록 신문지 같은 빗소리를
한 페이지씩 넘기다가
새벽녘에 문득
봄이 떠나가고 있음을 깨달았네

내 생에 언제 한 번
꿀벌들 날개 짓 소리
어지러운 햇빛 아래서
함박웃음 가득 베어 물고
기념사진 한 장이라도 찍어본 적이 있었던가.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풍경들은 언제나 흐림
젊은 날 만개한 벚꽃같이 눈부시던 사랑도 끝내는
종식되고 말았네

모든 기다림 끝에 푸르른 산들이 허물어지고
온 세상을 절망으로 범람하는 황사바람
그래도 나는 언제나 펄럭거리고 있었네.

이제는 이마 위로 탄식처럼 깊어지는 주름살
한 사발 막걸리에도 휘청거리는 내리막
어허,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네.

별로 기대할 추억조차 없는 나날 속에서
올해도 속절없이 봄은 떠나가는데
무슨 이유로 아직도 나는
밤새도록 혼자 펄럭거리고 있는지를,



등꽃
  이외수


등꽃 1

제일 먼저 꽃 피는 것도
그대 등뒤에

제일 나중에 꽃 피는 것도
그대 등뒤에

돌아보아, 라고 문득 말하면
어느새 사라지고 없네
아무튼 쓸쓸한 건 하늘이겠지


흔들림
     이외수


바람 불 때 흔들리는 목숨들은
흔들리는 목숨대로
그만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살아가나니

양지바른 산비탈 봄날은 깊어
바람도 없는 한나절
꿀물같이 흐르는 햇살에 허리 적시고
산벌들 날개소리에도 흔들리는 싸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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