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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긴글 짧은글 ♣/시가 있는 풍경

사랑은 / 이승희

by 별스민 2008. 8. 8.
사랑은 / 이승희
 스며드는 거라잖아.
 나무뿌리로, 잎사귀로, 
 그리하여 기진맥진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마른 입맞춤.
  그게 아니면
  속으로만 꽃 피는 무화과처럼
  당신 몸속에서 오래도록 저물어가는 일.
  그것도 아니면
  꽃잎 위에 새겨진 무늬를 따라 
  꽃잎의 아랫입술을 열고 
  온몸을 부드럽게 집어넣는 일. 
  그리하여 당신 가슴이 안쪽으로부터 데워지길 기다려 
  당신의 푸르렀던 한 생애를 낱낱이 기억하는 일.
  또 그것도 아니라면
  알전구 방방마다 피워놓고
  팔베개에 당신을 누이고 그 푸른 이마를 만져보는 일
  아니라고? 그것도 아니라고?
  사랑한다는 건 서로를 먹는 일이야
  뾰족한 돌과 반달 모양의 뼈로 만든 칼 하나를
  당신의 가슴에 깊숙이 박아놓는 일이지
  붉고 깊게 파인 눈으로
  당신을 삼키는 일.
  그리하여 다시 당신을 낳는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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