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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긴글 짧은글 ♣/시가 있는 풍경

생을 배웅하다

by 별스민 2014. 3. 28.

생을 배웅하다 
          정낙추  

 

아직도 눈물이 남아 있느냐고 바람이 묻는다
그렇다는 대답 대신 고개를 서쪽으로 돌린다

 

해가 저문 들판에서는
언 땅 풀리는 냄새가 풍기고
지난겨울에도 꺽이지 않은 마른 갈대가
비로소 허리를 접는다

 

하늘이 흐린 것은 눈물 탓
눈동자를 벗어나지 못한 메마른 눈물 한 방울을
망각의 강물에 던진다

사랑했던 날들이 있었던가


스러져 가는 노을을 등에 업고 묻는다

미움을 키운 세월 앞에서 

실어증에 걸린 젊은 날은
지나고 보니 별거 아닌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고백하지만 이미 해는 기울었다

 

어제는 멀리 달아나고
먼 날은 거울처럼 선명하다
무수한 농담과 진담 사이에서
길을 헤메던 시절이 차라리 좋았다

 

넘어져도 길을 만들 수 있었으니
모든 길이 훤히 보이는 건
제 길만 다니는 산짐승처럼
정해진 길을 가야 한다는 통보다

 

그 길의 끝자락에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生의 계약서를 들춰보며
옆구리 한쪽 빈자리를 담담한 손길로 어루만지려 해도
마음이 먼저 휘청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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