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연민의 시간·2
우리 두 사람이
산책길 호젓한 숲에 들었다가
동시에 요의尿意를 느껴설랑은
나는 여기 소나무 둥치에 몸을 가리고
아내는 저만치 수풀 뒤에 숨어 앉아 일을 보았더랬지
흘낏 돌아보니
아, 거기 이제 마악 져가는 보름달 하나
숲 한 구석이 아연 화안해졌어
그 때 나는 보았지
누가 볼세라 등뒤 옷자락을 끌어내려
부끄럼을 가리는 아내의 이마 위에서
놀란 청설모 한 마리 숨죽이고 숨어서 보는 것을,
아내도 알았을까
때맞춰 소나무들이 뻣뻣하게 서서는
솨아-솨 제 이마를 바람에 흔들어 식히던 것을,
나만이
옛날처럼 아랫도리에 전해오는 저릿함도
가슴에 솟구치는 설렘도 없어
힘없이 떨어지는 내 오줌발이 괜히 서글퍼져서
애먼 돌멩이 몇 개를 숲 저 쪽으로 날렸지
힘이 남아도는갑다고 핀잔은 들었지만
오늘은 오늘만큼은
애 둘 키우고 무너진 아내의 몸매가
달덩이처럼 그렇게 밉지는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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