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유리(琉璃) 1
이기철
얼마를 더 걸으면
빨래처럼 희어지는 삶을 만날 수 있을까
내 자작나무만큼이나 흰 오전을 맞으려고
잎새를 흔드는 동풍보다 숨가삐 뛰어온 나날
노래하는 새들, 소리내는 벌레들 뒤로
냇물만 쉬이 흘 러갔을 뿐
먼지의 날들은 하루의 길이에도 닳은 신발
소리로만 남아 있다
들녘에 피는 꽃처럼
나 또한 혼자서도 꽃필 수 있다면
한 소절 피리 소리에
구겨진 생애가 명주가 되는 악사 처럼
손바닥만한 삶 위에 작은 보석 하나 가꿀 수 있으리
차운 돌을 데우는 오전의 햇살처럼
삶이 마침내 눈부신 것이기 위해서는
깨어질 때 더욱 빛나는 유리가 아니면 안 된다
깁고 꿰메면서도 끌고 가야 하는 제 날들이라면
누가 제 생애를 힘겹다고 진창 속에 버리겠는가
몸이 죄를 짓고 영혼이 기도하며 가는 길이 삶일진대
아무도 어제를 딛고 온 발자국
되돌릴 수 없다
죄를 쌓으며 걸어온 길일지라도
제 죄질을 벗겨 옷 지어 입을 수는 없다
어느 영원의 단애에 서면
내 영혼의 향기 한 가닥
들판의 꽃으로 피어날 수 있을까
작게 피어 더욱 아름다운 꽃처럼 단추 속 온기를
추운 나무들에 나누어줄 수 있다면
흩어져도 멀리 가는 향기같이 비로소
내 하루 유리라 말할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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