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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긴글 짧은글 ♣/시가 있는 풍경

조병화 시

by 별스민 2008. 9. 4.
* 하루 하루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

하루 하루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너를 떠나며 산다 
너와 작별을 하며 산다 
나를 버리면 산다 
사람 마음은 누구나 스스로 
스스로의 보이지 않는 줄에 매여 
스스로의 운명을 살다가 
스스로의 사그라진 운명 끝에서 
그 멍에를 벗고 
홀 홀 
또다른 곳으로 떠나는 거지만 
이 떠남 
이 작별 
가까운 거리에서 
너와 나 
하루를 너를 생각하며 
열 흘을 너를 생각하며 
한해를 너를 생각하며 
시시각각을 너를 생각하며 
소리없이 소리없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너를 떠나며 산다 
너와 작별하며 산다 
멍, 나를 버리면 산다 
아, 이 적막 
너는 거기에서 
나는 여기에서. 

* 낙엽 *
당신 생각만 했지요 
당신께만 할 이야기가 많았지요 
당신만 기다리다 말았지요 
초록색 몸차림을 하고 단장을 하고 
바람이 불어도 비가 내려도 
당신 생각만 했지요 
어느날 당신이 내 그늘 아래 쉬었을 때 
그때 내 마지막 그 말을 당신에게 주는 걸 그랬어요 
헤어진다는 것은 영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헤어진다는 것은 
아주 잊어버린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 생각만 했어요 
당신께만 할 말이 많았어요 
어제와 오늘이 이렇게도 먼 이 자리에서 
당신만 기다리다 말았어요 

* 깊은 밤에 *
깊은 밤에 잠이 깨면 
무심코 생각나는 그 사람 
그분은 지금 어떻게 지낼까 
고마운 사람아 
캄캄한 밤에 잠이 깨면 
무심코 그리워지는 그 사람 
그분은 지름 어떻게 지낼까 
아직은 같이 
이 이승에 머물고 있으면서도 
같이는 할 수 없는 한 자리 
아, 고독한 사랑아 
바람이 불고, 여기저기 
세월이 날이는 이 가을, 깊은 밤 
언제 이 한마디 말을 전하지 
아직도 사랑한다고. 

* 바다에서의 엽서 *
이렇게도 황홀한 
바다노을을 
혼자서 본다는 건 
낭비입니다 
너울너울 물결치며 
출렁거리는 바다와 
흐르는 구름과 
하늘 
타도록 빨간 
저녁노을을 
혼자서 본다는 건 
벌이옵니다. 
가물거리는 먼 수평선에 
걸려 있는 
어선 한 척 
그것에서 인생을 느끼는 
이 소식 
아름다운 절경을 
혼자서 느낀다는 건 
실로 이것이 인생의 적막이옵니다 
*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 
헤어지는 연습을 하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아름다운 얼굴, 아름다운 눈 
아름다운 입술, 아름다운 목 
아름다운 손목 
서로 다하지 못하고 시간이 되려니 
인생이 그러하거늘 
세상에 와서 알아야 할 일은 
떠나는 일'일세 
실로 스스로의 쓸슬한 투쟁이었으며 
스스로의 쓸쓸한 노래이었으나 
작별을 하는 절차를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방법을 배우며 사세 
작별을 하는 말을 배우며 사세 
아름다운 자연, 아름다운 인생 
아름다운 정, 아름다운 말 
두고 가는 걸 배우며 사세 
떠나는 연습을 하며 사세 
인생은 인간들의 옛집 
아! 우리 서로 마지막 
말을 배우며 사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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