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머니의 바다 -
김준태
아가야, 오늘은
솔바람 구비구비 동백꽃 남쪽
그 해남이란 곳에 걸어가서
대추씨앗처럼 따글따글 익은 슬픔도 만나보고
천년을 살아온 놋쇠바람 손자가 되어
할머니의 푸른 친정 앞바다를 허우적거리면
병든 내 노래도 핏기가 돌까 혹은 돌까!
공자 맹자 사서四書를 읽었다는 사람들이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무지랭이들 앞서서
갈팡질팡 서로의 목숨을 팔아먹던 시절
피, 피, 피가 핑핑핑 들끓던 그 망나니시절에도
뽕나무밭 뱀재기벌레 한 마리도 밟지 않고
진도나 아리랑고개를 후여후여 넘어오신 할머니
그래도 자신의 죄罪만을 드러내며 대흥사大興寺에 빌고!
부처님께 빌고 한울님께 빌고
논 한가운데 옹달샘에 가서 옹달샘신神한테 빌고
당산나무에 가서 당산나무神한테 빌고
달을 보며 달을 쫓아가며 둥그러이 빌고
하루에도 수십번 춘하추동 수수백년 빌고지고
쌀 한톨 콩알 하나 하늘로 알고 살아오신 할머니
할머니의 무명베 치마에 묻혀서 펄럭인다면
병든 우리 노래도 핏기가 돌까 혹은 돌까!
살아생전 밭을 매다가도
축! 처진 늙은 젖이라도 내밀어
어린 손자들의 울음을 울음을 막아주던 할머니!
아가야, 오늘은 그러면 그러했던 할머니의 친정 앞바다에 풍덩 뛰어든다면
거울이 빠져나간 내 몸뚱이는 밝아질까 혹은 밝아질까
솔바람 구비구비 동백꽃 남쪽
그 해남이라는 곳에 일자무식一字無識으로 걸어가서
대추씨앗처럼 따글따글 익은 슬픔도 만나보고
천년을 넝쿨지어 나부껴 온 놋쇠바람의 손자가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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