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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긴글 짧은글 ♣/시가 있는 풍경

가을에

by 별스민 2020. 11. 3.

가을에

   서정주

 

오게 아직도 오히려 사랑할 줄을 아는 이.

쫓겨나는 마당귀마다,푸르고도

여린 문들이 열릴 때는 지금일세.

 

오게 저속에 항거하기에 여울지는 자네

그 소슬한 시름의 주름살들 그대로 데리고

기러기 앞서서 떠나가야 할

섧게도 빛나는 외로운 안행

 

이마와 가슴으로 걸어야 하는 가을

안행이 비롯해야 할 때는 지금일세

작년에 피었던 우리 마지막 국화꽃이 있던 자리,

 

올해 또 새것이 자넬 달래 일어나려고

백로는 상강으로 우릴 내리 모네.

오게 지금은 가다듬어진 구름 헤

매고 뒹굴다가 가다듬어진 구름은

 

이제는 양귀비의 피비린내 나는 사연으로는

우릴 가로막지 않고 휘영청한

개벽은 또 한번 뒷문으로부터 우릴 다지려

아침마다 그 서리 묻은 얼굴들을 추켜들 때일세.

 

오게 아직도 오히려 사랑할줄을 아는 이.

쫓겨나는 마당귀마다 푸르고도

여린 문들이 열릴 때는 지금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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