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와 긴글 짧은글 ♣/시가 있는 풍경

벚꽃 그늘에 앉아 보렴

by 별스민 2024. 4. 14.

벚꽃 그늘에 앉아 보렴

                      이기철

벚꽃 그늘 아래 잠시

생애를 벗어 놓아 보렴

입던 옷 신던 신발 벗어 놓고

누구의 아비 누구의 남편도 벗어 놓고

햇살처럼 쨍쨍한 맨몸으로 앉아 보렴

직업도 이름도 벗어 놓고

본적도 주소도 벗어 놓고

구름처럼 하얗게 벚꽃 그늘에 앉아 보렴

그러면 늘 무겁고 불편한 오늘과

저당 잡힌 내일이

새의 날개처럼 가벼워지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벚꽃 그늘 아래 한 며칠

두근거리는 생애를 벗어 놓아 보렴

그리움도 서러움도 벗어 놓고

사랑도 미움도 벗어 놓고

바람처럼 잘 씻긴 알몸으로 앉아 보렴

더 걸어야 닿는 집도

더 부서져야 완성되는 하루도

동전처럼 초조한 생각도

늘 가볍기만 한 적금 통장도 벗어 놓고

벚꽃 그늘처럼 청정하게 앉아 보렴

그러면 용서할 것도 용서받을 것도 없는 우리 삶

벌 떼 잉잉거리는 벚꽃처럼

넉넉하고 싱싱해짐을 알 것이다

그대흐린 삶이 노래처럼 즐거워지길 원하거든

이미 벚꽃 스친 바람이 노래가 된

벚꽃 그늘로 오렴

'♣ 시와 긴글 짧은글 ♣ > 시가 있는 풍경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사꽃 피는 언덕에서  (0) 2024.04.15
시가 있는 풍경  (0) 2024.04.14
봄 날  (0) 2024.04.11
파름한 봄 날  (0) 2024.04.11
노루귀  (0) 2024.03.2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