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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긴글 짧은글 ♣/포토에세이

힐링의 아침

by 별스민 2021. 10. 19.

향수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 베개를 돋아 고이 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 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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