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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긴글 짧은글 ♣/시가 있는 풍경

소리없이 곰팡이가 자란다

by 별스민 2012. 12. 29.

소리없이 곰팡이가 자란다  
                             박서영 

 
검은 그림자를 펄럭이며 나는 간다
소리없이 바람이 들어 오는 창문 꼭꼭 닫으며
몸 안 어딘가에 곰팡이를 기르면서
그늘과 그늘로 이어진  길다란 길을 가는 것이다

 

몸속에서 곰팡이가 자란다
밥에 핀 푸르슴한 꽃 시간은 번식한다

추억이라는 허름한 이름으로 그해 봄
꽃이 피었고 사람들은 다가와 우르르 떠났다

 

나는 저 들판에 꺼꾸로 쳐박힌
빈 병이라도 꽃히길 원했었지만
아무도 나의 창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그런 허망한 꿈이라도 꾸는 밤은 그래도 좋았다

 

이제 나는 썩어가는 심장을 들고
내 몸 속에서만 자란다

사람들은 뒤돌아서서 손가락질 해대거나
욕을 하면서 이별을 감추리라


나는 가능한한 냄새를 풍기지 않으면서 썩어가고 싶지만
밥이 처음부터 곰팡내를 풍겼던 것처럼
모든 존재들은 그렇다
냄새를 풍기려고 태어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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