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나그네
김재진
점점 더 눈이 퍼붓고 지워진 길 위로 나무들만 보입니다
나무가 입고 있는 저 순백의 옷은 나무가 읽어야 할 사상이 아닌지요
두꺼운 책장 넘겨 찾아내는 그런 사상 말입니다
그대가 앉아 있는 풍경 뒤에서 내가 노을이 된 것은 알 수 없는
그런 사상 때문은 아닙니다
그대라고 부르는 그 이름의 떨림이 좋아 그대를 그대라 부르고 싶을 뿐,
또 한 번의 사랑이 신열처럼 찾아와서 나를 문 두드릴 때
읽고 있던 책 내려놓으며
그대는 나무가 입고 있는 그 차가운 사상으로 나를 바라보게 되겠지요
그대, 단 한번 내가 가슴속에 쌓아두고 싶은 맹세나 기도 같은 그대
그대가 퍼붓는 눈발이라면 나는 서 있는 나무 일수밖에 없습니다
그대가 바람이라면 나는 윙윙 울고 있는 전신주 일수 밖에 없습니다
시간이 눈 위에 세워놓은 이정표 따라 슬픔 쪽으로 좀더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그대는 쏟아지는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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