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수만 있다면
도종환
만들수만 있다면
아름다운 기억만을 만들며 삽시다
남길수만 있다면
부끄럽지 않은 기억만을 남기며 삽시다
가슴에 성에 낀 듯 시리고 외로웠던 뒤에도
당신은 차고 깨끗했습니다
무참히 짓밟히고 으깨어진 뒤에도
당신은 오히려 당당했습니다
사나운 바람 속에서 풀잎처럼 쓰러졌다가도
우두둑 우두둑 다시 일어섰습니다
꽃피던 시절의 짧은 기쁨보다
꽃 지고 서리 내린 뒤의 오랜 황량함 속에서
당신과 나는 가만히 손을 잡고 마주서서
적막한 한 세상을 살았습니다
돌아서 뉘우치지 맙시다
밤이 가고 새벽이 온 뒤에도 후회하지 맙시다
만들수만 있다면
아름다운 기억만을 만들며 삽시다
'♣ 시와 긴글 짧은글 ♣ > 시가 있는 풍경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글픈 바람 (0) | 2021.12.07 |
---|---|
내가 너를 (0) | 2021.12.04 |
오히려 비내리는 밤이면 (0) | 2021.12.01 |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들은 아름답습니다 (0) | 2021.11.29 |
가을 엽서 (0) | 2021.11.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