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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긴글 짧은글 ♣/시가 있는 풍경

만들수만 있다면

by 별스민 2021. 12. 3.

만들수만 있다면

                도종환

 

만들수만 있다면
아름다운 기억만을 만들며 삽시다
남길수만 있다면
부끄럽지 않은 기억만을 남기며 삽시다

가슴에 성에 낀 듯 시리고 외로웠던 뒤에도
당신은 차고 깨끗했습니다
무참히 짓밟히고 으깨어진 뒤에도
당신은 오히려 당당했습니다

사나운 바람 속에서 풀잎처럼 쓰러졌다가도
우두둑 우두둑 다시 일어섰습니다

꽃피던 시절의 짧은 기쁨보다
꽃 지고 서리 내린 뒤의 오랜 황량함 속에서
당신과 나는 가만히 손을 잡고 마주서서
적막한 한 세상을 살았습니다

돌아서 뉘우치지 맙시다
밤이 가고 새벽이 온 뒤에도 후회하지 맙시다
만들수만 있다면
아름다운 기억만을 만들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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