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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긴글 짧은글 ♣2106

꽃길만 걸어요 꽃길만 걸어요 지소영 가시밭 길을 걸어도 이왕이면 경쾌하게 둠칫 두둠칫 바람에 몸을 맡겨 한걸음 한걸음 춤을 추듯이 말야 한번뿐인 인생 마음먹기 나름인걸 그렇게 마음속에 꽃한송이 품고 살면 어딜가나 꽃길이지 2022. 6. 19.
꽃밭 2022. 6. 10.
당신이 보고싶은 날 - 윤보영 ​ 길을 가다 우연히 당신 생각이 났습니다 ​꽃을 보고 예쁜 꽃만 생각했던 내가 꽃 앞에서 꽃처럼 웃던 당신 기억을 꺼내고 있습니다 ​ 나무를 보고 무성한 잎을 먼저 생각했던 내가 나무 아래서 멋진 당신을 보고 싶어 하고 있습니다 ​ 바람이 붑니다 바람에 지워야 할 당신 생각이 오히려 가슴에 세찬 그리움으로 불어옵니다 ​하늘은 맑은데 가슴에서 비가 내립니다 당신이 더 보고 싶게 쏟아집니다 ​ 보고 나면 더 보고 싶어 고통은 있겠지만 한 번쯤 당신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살다보면, 간절한 바람처럼 꼭 한 번은 만나겠지요 ​ 당신 앞에서, 보고 싶었다는 말 조차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참 많이 보고 싶습니다 2022. 5. 27.
나른한 오후 나른한 오후 김광석 아 참 하늘이 곱다 싶어 나선 길 사람들은 그저 무감히 스쳐가고 또 다가오고 혼자 걷는 이 길이 반갑게 느껴질 무렵 혼자라는 이유로 불안해하는 난 어디 알 만한 사람 없을까 하고 만난 지 십 분도 안 돼 벌써 싫증을 느끼고 아 참 바람이 좋다 싶어 나선 길에 아 참 햇볕이 좋다 싶어 나선 길에 사람으로 외롭고 사람으로 피곤해하는 난 졸리운 오후 나른한 오후 물끄러미 서서 바라본 하늘 아 참 바람이 좋다 싶어 나선 길에 아 참 햇볕이 좋다 싶어 나선 길에 사람으로 외롭고 사람으로 피곤해하는 난 졸리운 오후 나른한 오후 물끄러미 서서 바라본 하늘 2022. 5. 27.
기억의 자리 기억의 자리 나희덕 어렵게 멀어져간 것들이 다시 돌아올까봐 나는 등을 돌리고 걷는다. 추억의 속도보다는 빨리 걸어야 한다. 이제 보여줄 수 있는 건 뒷모습뿐, 눈부신 것도 등에 쏟아지는 햇살뿐일 것이니 도망치는 동안에만 아름다울 수 있는 길의 어귀마다 여름꽃들이 피어난다, 키를 달리하여 수많은 내 몸들이 피었다 진다. 시든 꽃잎이 그만 피어나는 꽃잎 위로 떨어져내린다. 휘청거리지 않으려고 걷는다, 빨리, 기억의 자리마다 발이 멈추어선 줄도 모르고 예전의 그 자리로 돌아온 줄도 모르고 2022. 5. 23.
봄볕속에서 봄볕속에서 조팝나무가 좁쌀같은 꽃송이를 팡팡팡 터트리고 있다 하얗게 하얗게 조팝나무 옆에선 할머니가 좁쌀같은 먼 옛날의 기억들을 팡팡팡 터트리고 있다 하얗게 하얗게 -이화주의 동시집 내별잘있나요 중에서 - 2022. 5. 16.
걱정말아요 2022. 5. 16.
아내와 나 사이 아내와 나 사이 이생진 아내는 76이고 나는 80입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 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 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 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누구 기억이 일찍 들어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 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 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 서로 모르는 사이가 서로 알아가며 살다가 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 그것을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인생? 철학? 종교? 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2022. 5. 15.
나비의 여행 나비의 여행 이기철​ 여린 생이 여린 생을 끌고 간다 생에 한 번뿐일 저 채색의 눈물겨운 외출 영원의 모습은 저런 것일까 슬픔의 목록 위에 생을 얹어놓고 가는 돌아서면 길 잃고 말 저 슬픈 여행 꽃술의 달콤함을 알았다면 너도 필생을 다한 것이다 몇 올 그물 무늬와 부챗살의 날개로 작은 색실 풀어 허공을 물들이며 해당 분매 망초의 키를 넘어 나비는 난다 저 아지랑이 같은 비상에도 우화는 분명 아픔이었을 것이다 잠들지 말아라, 생이 길지 않다 그 날개 아래, 꽃그늘 아래 들판의 유순함은 너로 인함이다 너에게 바치기 위해 나는 지순이란 말을 아껴왔다 햇살과 물방울과 나비와 가벼움으로 이루는 저기 고결한 생 바라보기에도 눈부신 2022. 5. 15.
시절 시절 민왕기 ​ ​ 지나간 것은 모두 좋았던 시절, 미루나무 아래 앉아 늙고 싶은 오후다 ​ 여기 앉아보니 할 말이 없다, 할 말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 이렇게 있다 보면 조용해지고, 지나가는 것은 모두 좋았다는 생각에 ​ 지금도 그때도 모두 좋았던 시절, 눈물 많아 좋았던 시절이라고 해본다 ​ 혼자 있길 좋아했던 어린애가 늘씬한 미루나무 아래 앉아 여물고 있다 ​ 구름이 시절을 천천히 지나간다 시절은 그렇게 지나야 한다는 듯이 천천히 지나간다 2022. 5. 13.
산책 벗 ​ 조병화 ​ ​벗은 존재의 숙소이다 그 등불이다 그 휴식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먼 내일에의 여행 그 저린 뜨거운 눈물이다 그 손짓이다 오늘 이 아타미 해변 태양의 화석처럼 우리들 모여 어제를 이야기하며 오늘을 나눈다 그리고, 또 내일 뜬다 산책 ​ 조병화 ​ 참으로 당신과 함께 걷고 싶은 길이었습니다 참으로 당신과 함께 앉고 싶은 잔디였습니다 당신과 함께 걷다 앉았다 하고 싶은 나무 골목길 분수의 잔디 노란 밀감나무 아래 빈 벤치들이었습니다 참으로 당신과 함께 누워 있고 싶은 남국의 꽃밭 마냥 세워 푸르기만한 꽃밭 내 마음은 솔개미처럼 양명산 중턱 따스한 하늘에 걸려 날개질 치며 만나다 헤어질 그 사람들이 또 그리워들었습니다 참으로 당신과 함께 영 걷고 싶은 길이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영 앉아 있고.. 2022. 5. 11.
봄이 그냥 지나가요 봄이 그냥 지나요 김용택 올 봄에도 당신 마음 여기 와 있어요 여기 이렇게 내 다니는 길가에 꽃을 피어나니 내 마음도 지금쯤 당신 발길 닿고 눈길 가는 데 꽃 피어날 거예요 생각해 보면 마음이 서로 곁에 가 있으니 서로 외롭지 않을 것 같아도 우린 서로 꽃 보면 쓸쓸하고 달 보면 외롭고 저 산 저 새 울면 밤새워 뒤채어요 마음이 가게 되면 몸이 가게 되고 마음이 안 가드래도 몸이 가게 되면 마음도 따라가는데 마음만 서로에게 가서 꽃 피어나 그대인 듯 꽃 본다지만 나오는 한숨은 어쩔 수 없어요 당신도 꽃산 하나 갖고 있고 나도 꽃산 하나 갖고 있지만 그 꽃산 철조망 두른 채 꽃 피었다가 꽃잎만 떨어져 짓밟히며 이 봄이 그냥 지나고 있어요. 2022. 5.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