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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긴글 짧은글 ♣1999

오렴 오렴 ​ 백창우 오렴 사는 일에 지쳐 자꾸 세상이 싫어질 때 모든 일 다 제쳐두고 내게 오렴 눈물이 많아지고 가슴이 추워질 때 그저 빈 몸으로 아무 때나 내게 오렴 ​네가 자유롭게 꿈꿀 수 있는 방 하나 마련해 놓고 널 위해 만든 노래들을 들려줄게 ​네가 일어날 때 아침이 시작되고 네가 누울 때 밤이 시작되는 이곳에서 너를 찾으렴 망가져 가는 너의 꿈을 다시 빛나게 하렴 2024. 1. 25.
부끄러움 부끄러움 趙炳華 인생을 다 산 이 끝자락에서 무슨 그리움이 또 남아 있겠는가만 이 외로움은 어디에 끼여 있는 사람의 때 이런가 참으로 오래도 살아오면서 모진 그리움, 모진 아쉬움, 모진 기다림, 그 사랑 만남과 헤어짐, 희로애락 겪은 내게 무슨 미진함이 또 있겠는가만 아직도 채 닦아내지 못한 이 외로움은 어디에 남아 있는 사람의 때 이런가 때때로, 혹은 시도때도 없이 스며드는 이 외로움 아, 이 끝자락에 이 부끄러움을 어찌하리. - 시집 남은 세월의 이삭 중에서 - 2024. 1. 24.
그 겨울의 시 그 겨울의 시 박노해 문풍지 우는 겨울밤이면 윗목 물그릇에 살얼음이 어는데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어린 나를 품어 안고 몇 번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시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소금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 찬바람아 잠들어라 해야 해야 어서 떠라 한겨울 얇은 이불에도 추운 줄 모르고 왠지 슬픈 노래 속에 눈물을 훔치다가 눈산의 새끼노루처럼 잠이 들곤 했었네 2024. 1. 14.
1월의 시 1월의 시 이해인 첫 눈 위에 첫 그리움으로 내가 써보는 네 이름 맑고 순한 눈빛의 새한 마리 나뭇가지에서 기침하며 나를 내려다본다 자꾸 쌓이는 눈 속에 네 이름은 고이 묻히고 사랑한다 사랑한다 무수히 피어나는 눈꽃 속에 나 혼자 감당 못할 한방울의 피와 같은 아픔도 눈밭에 다 쏟아 놓고 가 부디 고운 저분홍 가슴의 새는 자꾸 나를 재촉하고 2024. 1. 12.
저물어 그리워지는 것들 저물어 그리워지는 것들 이기철 나는 이 세상을 스무 번 사랑하고 스무 번 미워했다 누군들 헌 옷이 된 생을 다림질하고 싶지 않은 사람 있으랴 유독 나한테만 칭얼대는 생 돌멩이는 더 작아지고 싶어서 몸을 구르고 새들은 나뭇잎의 건반을 두드리며 귀소 한다. 오늘도 나는 내가 데리고 가야 할 하루를 세수시키고 햇볕에 잘 말린 옷을 갈아입힌다. 어둠이 나무 그림자를 끌고 산 뒤로 사라질 때 저녁 밥 짓는 사람의 맨발이 아름답다. 개울물이 필통 여는 소리를 내면 갑자기 부엌들이 소란해진다 나는 저녁만큼 어두워져서는 안 된다. 남은 날 나는 또 한 번 세상을 미워할는지 아니면 어제보다 더 사랑할는지 2024. 1. 12.
눈 내린 강변의 아침 겨울 강가에서 안 도 현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 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 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2024. 1. 10.
2023 아듀 내 안의 대설특보 김은식 ​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날 낯선 거리를 이유도 없이 펑펑 쏘다니었소 발자취는 끝 간 데 없이 내 흔적을 미행하듯 찍고 또 찍는 일상의 발자국들 ​오늘은 그만 따라오지 마라 혼자 걷고 싶은 날 이거늘 ​ 하늘은 온통 잿빛에 홀연한 나는 내 그림자마저 벗어두고 길을 나섰나니 해도 달도 눈을 감고 모르는 채 눈만 펑펑 내리는 날 ​그동안 함께 했던 이들과 못 다 했던 일들과도 작별을 고하리 ​ 오롯이 혼자이고 싶은 날은 이미 이별한 이들에겐 아득하게 더 멀어질 오늘을 용서해다오 ​지금은 하늘도 요량이 없고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흰 눈만 펑펑 내리는데 ​ 미로 같은 세상을 하얗게 덮은 한 치 앞도 분간 없는 눈보라 속에서 여직 방황하던 세상 보는 눈을 이제 다시 뜬들 뭣하리 ​ 나.. 2024. 1. 1.
눈 내리는 날 월드컵 공원에서 눈을 기다리며 권오범 늙어갈수록 철들 기미조차 없는 나의 주책 첫눈은 함박눈이었으면, 하고 간절하게 마른하늘 우러러 히죽거리는 것이 언제부턴가 나도 몰래 내 안에 소녀 마음이 자라고 있었나보다 눈 감고 잠 끌어당겨 구절양장 인생길 치쓸다 보니 강아지와 함께 찍었던 발자국이 고향 남새밭에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어 미소 흘리며 엎치락 뒤치락하는 이불 속 서울은 낭이라더니 추억마저 되작이는 게 싫은걸까 한 사날 독하게 최대한 밤을 키워놓은 이정표 동지가 달력에서 뒷걸음질 치고 있다 백설기 같은 숫눈길로 달려오는 햇귀로 하루를 열고 싶은 이 마음 아랑곳 없이 밤새 기척도 없이 내린 비에 세상이 온통 호졸근한 아침 2024. 1. 1.
눈 내린 아침의 아름다운 풍경 겨울 사랑 박노해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 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 이 추운 떨림이 없다면 꽃은 무엇으로 피어나고 무슨 기운으로 향기를 낼 수 있겠느냐 나 언 눈 뜨고 그대를 기다릴 수 있겠느냐 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없다면 추워 떠는 자의 시린 마음을 무엇으로 헤아리고 내 언 몸을 녹이는 몇 평의 따뜻한 방을 고마워하고 자기를 벗어버린 희망 하나 커 나올 수 있겠느냐 아아 겨울이 온다 추운 겨울이 온다 떨리는 겨울 사랑이 온다 새하얀 설경을 즐기고 싶어 집 가까운 부천 식물원을 찾았다 우리 동네보다 조금은 많이 내린 식물원의 아침 풍경은 눈 부시다 부드러운 햇살에 녹아 내리기 전 몇컷 찍고 돌아나오는 길엔 들어갈 때 보았던 눈부시던 아름다운.. 2023. 12. 24.
눈 꽃 눈꽃 박인걸 나무들 가지마다 몇번이나 눈꽃이 피고져도 봄은 올 기색이 없다 차갑게 피는 눈꽃은 세상을 물들일 뿐 생명을 움직이지 못 하고 눈꽃에 마음이 들뜬 자들은 잠시 후 실망을 내뱉고 향기없은 차가운 가루에 낭만은 녹아내릴 것이다 눈꽃은 꽃이 아니라 누군가 지어준 이름일 뿐 죽은 별들을 화장한 가루일지도 모른다 눈 내린 가슴마다 무덤이되고 꽃이 죽은 길 거리는 차들도 무서워 설설긴다 그래서 눈꽃이 내리는 날이면 세상은 숨을 죽이고 폭설 아니기를 기도하고 있다 2023. 12. 24.
눈 내리는 풍경 강추위가 풀리면 눈 내리는 풍경앞에 근심없이 서 있고 싶어지는 저녁 일요일 이브엔 눈 내린다는 예보가 있어 조심스럽게 눈내리는 길 위에 서 있고 싶어진다 2023. 12. 22.
가느다란 눈이 날리는데 늦은 시간 마트를 가려고 집을 나섯는데 서쪽하늘 끄트머리 나뭇가지에 초승이 걸려있다 곤두박질한 추위에 가느다란 눈발이 날리는데... 2023. 1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