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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 긴글 짧은글 ♣/시가 있는 풍경 930

가을 가을 시 : 조병화 전투는 끝났다 이제 스스로 물러날 뿐이다 긴 그 어리석은 싸움에서 그 어리석음을 알고 서서히, 서서히, 돌아서는 이 허허로움 아, 얼마나 세상사 인간 관계처럼 부끄러운 나날이었던가 실로 살려고 기를 쓰는 것들을 보는 것처럼 애절한 일이 또 있으랴 가을이 접어들며 훤히 열리는.. 2008. 4. 9.
구름 구름 -조 병화 - 내가 네게 가까이 하지 않는 까닭은 내겐 네게 줄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네게서 멀어져가는 까닭은 내가 감내할 수 없는 것을 너무나 많이 너는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영 너를 잊고자 돌아서는 까닭은 말려들 아무런 관계도 없는 곳에서 어지러운 나를.. 2008. 4. 9.
사랑의 계절 사랑의 계절 - 조 병 화 - 해마다 꽃피는 계절이면 산에 들에 하늘에 사랑하고 싶은 마음 사랑하고 싶은 마음은 그 누구와 같이 집을 짓고 싶은 마음 그 누구와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이어라 끝이 보이지 않는 세상 아물아물 헤아릴 수 없는 시간에 매달려 한동안 사랑하고 싶은 마음은, 구름.. 2008. 4. 9.
주점 주점 - 조 병화 - 일체의 수속이 싫어 그럴 때마다 가슴을 뚫고드는 우울을 견디지 못해 주점에 기어들어 나를 마신다 나는 먼저 아버지가 된 일을 후회해 본다. 필요 이상의 예절을 지켜야 할 아무런 죄도 나에겐 없는데 살아간다는 것이 지극히 우울해진다 한때 이 거리가 화려한 화단으.. 2008. 4. 9.
칼칼한 동반 칼칼한 동반 - 조 병 화 - 좀 가라앉을 만하면 다시 불어닥치는 칼칼한 바람 한세월을 뜸할 사이없이 계속, 이렇게 모질게 가시길 바라는 것이 잘못이다. 뜬구름처럼 해와 달이 지나가고 밤이면 아름다운 별이 솟는 엄청난 이 천지에서 머지않아 어디론지 사라져 갈 미세한 생명하나 가난.. 2008. 4. 9.
서산나귀의 獨白 서산나귀의 獨白 - 조 병 화 - 얼마나 나는 네게 적응하려 했을까 긴 세월을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 골몰하면서 얼마나 나는 네게 적응하려 했을까 비굴일 만큼 창피일 만큼 굴욕일 만큼 참으며, 견디며, 온힘 다하여 그 욕설을 풀며, 삭이며 얼마나 나는 상처진 가슴을 .. 2008. 4. 9.
향수 향수 - 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 2008. 4. 9.
봉숭아 봉숭아 도종환 우리가 저문 여름 뜨락에 엷은 꽃입으로 만났다가 네가 내 살속에 내가 네 꽃입속에 서로 붉게 몸을 섞었다는 이유 만으로 열에 열 손가락 핏물이 들어 네가 만지고 간 가슴마다 열에 열 손가락 핏물자국이 박혀 사랑아 너는 이리 오래 지워지지 않는것이냐 그리움도 손끝마다 핏물이 .. 2008. 4. 8.
봄날에 쓰는 편지 봄날에 쓰는 편지 시 :윤석주 눈시울 붉어지는 그리움 때문에 바람은 묵은 가지를 흔들 것이다. 메마른 가슴으로 사랑을 얘기할 수 없어 하늘은 재잘재잘 봄비를 또 뿌릴 것이다. 그러면 뭔가 알겠다는 듯이 잠을 자던 느티나무가 몸을 몇 번 뒤척이다가 드디어 새 이파리를 밀어 올릴 것이다. 돌각담 .. 2008. 4. 7.
당신이 나를 알아볼 때까지 당신이 나를 알아볼 때까지 시: 이 성복 간이 식당에서 저녁을 사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없습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없었습니다 사방에서 .. 2008. 4. 3.
가을밤 가을밤 - 김용택- 달빛이 하얗게 쏟아지는 가을 밤에 달빛을 밟으며 마을 밖으로 걸어나가보았느냐 세상은 잠이 들고 지푸라기들만 찬 서리에 반짝이는 적막한 들판에 아득히 서보았느냐 달빛 아래 산들은 빚진 아버지처럼 까맣게 앉아 있고 저 멀리 강물이 반짝인다 까만 산속 집들은 보이지 않고 담.. 2008. 4. 2.
사랑/김용택 사랑 - 김용택- 당신과 헤어지고 보낸 지난 몇 개월은 어디다 마음 둘 데 없어 몹시 괴로운 날들이었습니다 현실에서 가능할 수 있는 것들을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 두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신의 입장으로 돌아가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잊.. 2008. 4.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