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와 긴글 짧은글 ♣2104 겨울 나그네 겨울 나그네 김재진 점점 더 눈이 퍼붓고 지워진 길 위로 나무들만 보입니다 나무가 입고 있는 저 순백의 옷은 나무가 읽어야 할 사상이 아닌지요 두꺼운 책장 넘겨 찾아내는 그런 사상 말입니다 그대가 앉아 있는 풍경 뒤에서 내가 노을이 된 것은 알 수 없는 그런 사상 때문은 아닙니다 그대라고 부르는 그 이름의 떨림이 좋아 그대를 그대라 부르고 싶을 뿐, 또 한 번의 사랑이 신열처럼 찾아와서 나를 문 두드릴 때 읽고 있던 책 내려놓으며 그대는 나무가 입고 있는 그 차가운 사상으로 나를 바라보게 되겠지요 그대, 단 한번 내가 가슴속에 쌓아두고 싶은 맹세나 기도 같은 그대 그대가 퍼붓는 눈발이라면 나는 서 있는 나무 일수밖에 없습니다 그대가 바람이라면 나는 윙윙 울고 있는 전신주 일수 밖에 없습니다 시간이 눈.. 2024. 3. 15. 하얀 꽃 하얀 꽃 최순명 어제의 상처는 바람에 날리고 수줍은 미소로 내 앞에 있는 그대 별이 있는 밤, 별빛 추억으로 가슴 아팠으리. 하얀꽃 순박한 꽃 그대 간절함은 사랑, 머물기를 별빛에 기도하고 아니 죽어도 못 있겠다 눈물도 흘렸으리. 바람이 빰을 스치며 어깨를 다독이면 그대 설움 더 하겠지 안개 같은 기다림은 긴 터널 지나 밝은 햇살 오듯 사랑은 그렇게 왔고 그대 아픔까지 사랑하리. 2024. 3. 14. 꽃 꽃 선미숙 예뻐라 예뻐라 하지 않아도 그냥 예쁩니다 이색저색 입히지 않아도 그저 아름답습니다 이자리 저자리 가리지 않아도 어디서나 곱습니다 누구나 한 때 그렇게 좋은 시절 있습니다 2024. 3. 14. 의자 의자 조병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 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 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드리겠읍니다. 2024. 3. 12. 여백 여백 도종환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 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 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 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있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 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Ernesto Cortazar /Dreaming 2024. 3. 8. 수리산의 변산바람꽃 봄은 어김없이 찾아와 여기저기 작은 꽃 소식이 들려 수리산을 찾았다 응달진 곳 잔설이 남아있는 산골짜기에 앙증맞은 사랑의 몸짓으로 반긴다 갸냘픈 몸으로 언땅을 치고 올라 피어올린 작은 꽃들 늘 경이롭다 햇살 눈부신 날 다시 한번 찾고 싶어지는 사랑스런 모습 2024. 3. 7. 하늘 하늘 조병화 멀리 가고 싶은 하늘이다 그리운 것 없이 그리운 하늘이다 나는 옥상에 오른다 나와 유리流離한 관능이 과감한 하늘을 달리고 멀리 스치는 해후의 소리 나를 부르는 소리 나를 부르는 소리 끝에 구름은 탄다 구름 끝에 남은 청춘이 날을 샌다 창을 제치고 사랑아 가자 한다 하늘아 가자 한다 또다시 옥상에 서서 나는 중량에 서서 퓨리턴 처럼 반항처럼 주로 먼 곳을 바라본다. 2024. 2. 24. 눈꽃 세상을 즐기며 아침에 일어나자 창밖을 보니 나뭇가지 마다 설경으로 눈부시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집을 나섰다 평소에 눈이 내리면 가보리라 생각했던 한강의 미류나무를 생각하며 부지런히 달려갔는데 뜻밖의 한강의 하얀 세상이 눈부셔 절로 탄성이 나왔다 혼자라는게 참 아쉬운 마음으로 환상의 아름다운 설경을 만끽하며 한참을 기분좋은 아침 산책을 즐겼다 그리고 발길을 돌려 부지런히 월드컵 공원으로 갔다 도착하자 눈에 들어온 또 다른 아름다운 하얀 세상앞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서울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눈꽃을 보기가 쉽지않은데 친구들과의 약속시간이 가까워 마냥 더 즐기고 싶은 눈꽃 세상을 뒤로하고 친구들을 만나 점심을 함께하며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2024. 2. 22. 사랑하는 별 하나 사랑하는 별 하나 이성선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워 쳐다보면 눈 마주쳐 마음 비쳐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 가슴에 화안히 안기어 눈물짓듯 웃어 주는 하얀 들꽃이 될 수 있을까 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 갖고 싶다 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 별 하나 갖고 싶다 마음 어두운 밤 깊을수록 우러러 쳐다보면 반짝이는 그 맑은 눈빛으로 날 씻어 길을 비추어주는 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 2024. 2. 20. 오렴 오렴 백창우 오렴 사는 일에 지쳐 자꾸 세상이 싫어질 때 모든 일 다 제쳐두고 내게 오렴 눈물이 많아지고 가슴이 추워질 때 그저 빈 몸으로 아무 때나 내게 오렴 네가 자유롭게 꿈꿀 수 있는 방 하나 마련해 놓고 널 위해 만든 노래들을 들려줄게 네가 일어날 때 아침이 시작되고 네가 누울 때 밤이 시작되는 이곳에서 너를 찾으렴 망가져 가는 너의 꿈을 다시 빛나게 하렴 2024. 1. 25. 부끄러움 부끄러움 趙炳華 인생을 다 산 이 끝자락에서 무슨 그리움이 또 남아 있겠는가만 이 외로움은 어디에 끼여 있는 사람의 때 이런가 참으로 오래도 살아오면서 모진 그리움, 모진 아쉬움, 모진 기다림, 그 사랑 만남과 헤어짐, 희로애락 겪은 내게 무슨 미진함이 또 있겠는가만 아직도 채 닦아내지 못한 이 외로움은 어디에 남아 있는 사람의 때 이런가 때때로, 혹은 시도때도 없이 스며드는 이 외로움 아, 이 끝자락에 이 부끄러움을 어찌하리. - 시집 남은 세월의 이삭 중에서 - 2024. 1. 24. 그 겨울의 시 그 겨울의 시 박노해 문풍지 우는 겨울밤이면 윗목 물그릇에 살얼음이 어는데 할머니는 이불 속에서 어린 나를 품어 안고 몇 번이고 혼잣말로 중얼거리시네 오늘 밤 장터의 거지들은 괜찮을랑가 소금창고 옆 문둥이는 얼어 죽지 않을랑가 뒷산에 노루 토끼들은 굶어 죽지 않을랑가 아 나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낭송을 들으며 잠이 들곤 했었네 찬바람아 잠들어라 해야 해야 어서 떠라 한겨울 얇은 이불에도 추운 줄 모르고 왠지 슬픈 노래 속에 눈물을 훔치다가 눈산의 새끼노루처럼 잠이 들곤 했었네 2024. 1. 14.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 176 다음